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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꽃뱀 vs 성범죄자` 인생 걸린 진실공방

이용건,양연호 기자
이용건,양연호 기자
입력 : 
2017-11-09 17:33:28
수정 : 
2017-11-10 09: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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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 5건중 1건 `무혐의` 결론
입증 어렵고 기억 의존해 수사…진술 오락가락땐 신빙성 의심
허위신고 남발에 `꽃뱀` 오해도…억울한 가해자는 사회생활 파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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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현대카드 위촉계약직 여사원 A씨(26)는 최근 불거진 한샘 성폭행 의혹 사건을 보고 온라인 커뮤니티에 글을 올렸다. 올해 5월 센터(영업소) 회식 후 남성 팀장 B씨(35)가 자정이 넘은 시간 자신의 집을 찾아와 성폭행했다는 내용이었다. "잠결에 만취한 상태에서 사건이 벌어져 저항하지 못했다"는 A씨 주장에 비난의 화살은 현대카드와 가해자로 지목된 B씨에게 집중됐다. 하지만 인천 삼산경찰서는 당사자 면담과 주변인 증언, 당시 정황을 종합해 볼 때 B씨의 성폭력 혐의점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보고 사건을 무혐의 처리했으며 검찰도 같은 결론을 내렸다. B씨는 A씨를 무고죄로 고소했다. 진실은 여전히 오리무중인 가운데 A씨와 B씨, 회사 모두 들끓는 여론몰이에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9일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경찰이 검거한 성폭력 범죄자 2만9414명 중 무혐의 처분(송치의견 기준)을 받은 인원은 5746명으로 전체 인원의 19.5%에 달했다. 성폭력 혐의로 입건된 5명 중 1명이 무혐의 처분을 받은 셈이다. 성폭력 사건 무혐의 처분 비율은 2014년 15.6%에서 2015년 17.3%, 지난해 19.5%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성폭력 범죄는 뚜렷한 증거가 없는 사례가 많아 피해자 진술이 유일한 판단 기준이 되는 게 대부분이다.

이민 SOS성범죄대응센터 변호사는 "수사 시작 단계부터 공판 선고에 이르기까지 피해자 진술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이때 사건 묘사를 모순 없이 구체적으로 진술하는 쪽이 유리해진다"며 "만취 등 이유로 피해자가 일관된 진술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진짜 피해자도 혐의를 입증하지 못하고 억울한 피의자 역시 무고함을 입증하지 못해 난처해지는 일이 많다"고 전했다.

실제 A씨는 성폭력 피해 진술이 일관되지 않아 감사나 수사에 불리하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 측도 별도 외부 감사업체를 통해 영업소 내 다른 카드 모집인들을 조사한 결과 A씨가 동료들에게 B씨와 관계를 스스로 언급하고 다닌 점, 법적 개인사업자 신분인 A씨가 일을 그만두겠다고 계약 해지 면담을 했다가 다시 계약을 유지하기로 한 점 등을 근거로 정황상 당시 성폭력 행위가 있었던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소병도 서강대 법학연구소 연구원은 "피해자 기억에 주로 의존하는 성폭행 수사는 진위를 가리는 과정에서 피해자 진술이 조금이라도 헷갈리면 진술의 신빙성이 의심받기 쉽다"고 지적했다.

피해자 진술이 유일한 증거라는 점은 '양날의 칼'이 되기도 한다. 명확한 증거가 없어도 피해자 진술이 일관되고 합리적이면 법정에서 유죄 판결이 날 수 있기 때문이다. 성범죄 피해를 가장한 허위 신고가 최근 증가하는 이유다.

성범죄 피의자로 지목되면 실제 범법행위 여부를 떠나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는다. 혐의가 벗겨지기 전까지 고소와 재판에 시달리며 '사회적 매장'을 피하기 어렵다. 특정 조직에 속해 있으면 내부 징계 절차가 동시에 진행되며 이후 무혐의가 나와도 전근 조치 등 인사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가 흔하다.

허위 고소를 방지하기 위한 장치가 무고죄지만 성범죄 사건과 마찬가지로 입증이 어렵고 실제 처벌 수위가 낮다는 게 문제다. 최대 법정형은 징역 10년, 벌금 1500만원이지만 초범은 대부분 집행유예나 벌금형으로 이어진다. 경찰청에 따르면 무고죄 신고 건수는 2012년 2734건에서 지난해 3617건으로 32.3% 증가했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순식간에 무고의 가해자가 됨으로써 기존 피해자 지위까지 위협받게 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성폭력에 한해서 무고 혐의를 판단할 때에는 피해의 특성을 충분히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용건 기자 / 양연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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