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명의의 구속영장이 발부됐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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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2.06.03. 오전 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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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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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이지수씨(31·가명)가 모르는 번호로 전화를 받은 전 지난달 초순이었다. 수화기 너머 남성은 자신이 대검찰청 사무관이라고 했다. 최근에 한 성매매 업소를 단속했는데 이씨 명의의 통장을 발견해 이씨를 공범으로 보고 수사 중이라고 했다. 의심을 피하려면 계좌에 든 돈을 가져오라고 했다.

이씨는 예전에 이런 보이스피싱 수법이 있다고 들었다. 계좌에 성매매 수익금이라 할 돈도 없었다. 하지만 남성 건내준 인터넷 주소에 접속하니 대검찰청' 마크가 있는 웹페이지가 나왔다. 남성이 시키는 대로 '사건조회' 창에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하니 화면에 구속영장이 나왔다.
직장인 이지수씨(31·가명)는 지난달 초순 모르는 번호로 전화를 한통 받았다. 수화기 너머 남성은 자신이 대검찰청 사무관이라고 했다. 이씨가 남성이 불러준 링크로 들어가자 이씨의 이름이 적힌 구속영장 사진이 화면에 떴다./사진제공=이지수씨.
이씨는 구속영장을 본 적이 없다. '피고인' 항목에는 자신의 이름이 써 있었다. 그 밑에 영장번호, 사건번호가 있었다. 본문에는 성매매 특별법 위반과 불법자금은닉 등 혐의로 영장이 발부됐다고 적혀 있었다. 도주할 가능성이 있다는 취지였다.

화면을 아래로 내리니 자신의 계좌 내역이 나왔다. 모르는 사람들 돈이 하루 수십만원, 수백만원씩 들어왔다가 당일 빠져나갔다고 돼 있었다. 이씨의 머릿 속에 '돈 세탁'이란 단어가 스쳤다.

남성은 구속영장이 '조건부'라고 했다. 이제부터 자신의 연락을 받지 않으면 영장이 진짜 발부된다고 했다. 이어 녹취 조사를 할테니 조용한 곳으로 가라고 했다. 그 주 금요일 성매매 일당의 첫 재판이 열리는데 그날까지 녹취를 증거로 제출해야 무죄를 인정받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녹취에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섞여들어 가면 증거 효력을 잃는다고 했다.

이씨는 한동안 '정말 구속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씨는 검찰이 조사를 전화로 한다는 점이 이상해 전화를 끊었다. 이씨는 "통장을 내 명의로 만들어서 자금을 세탁했다고 하니 그럴싸했다"며 "처음에는 '성매매? 뚱딴지 같은 소리 하네' 싶었는데 영장 사이트를 보니 넘어갈 뻔했다"고 말했다.
직장인 이지수씨(31·가명)는 지난달 초 자신의 계좌가 성매매에 연루됐다는 익명의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 너머 남성이 불러준 링크에 접속하자 이씨 계좌에 모르는 사람 돈이 수십만원, 수백만원 입금됐다가 빠져나갔다는 계좌 거래 내역이 나왔다. /사진제공=이지수씨


"조건부 구속영장은 없다...법원 심문없이 영장 발부 불가"


법조계에선 이런 수법이 일반적인 검사 사칭 피싱의 변형이라고 한다. 법무법인 창과방패 이민 변호사는 "수법에 허점이 많지만 이를 알아채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이 변호사는 자신도 모르는 새 구속영장이 발부될 수는 없다고 했다. 현행법상 구속영장 발부 전 판사는 피의자를 불러서 도주와 증거 인멸 우려가 있는지 심문해야 한다. '조건부 구속영장'도 현행법에 없는 개념이다.

검찰이 피의자를 전화로 조사하는 것도 일반적이지 않다. 현행법상 녹음 파일은 '정황 증거'라서 효력이 약하다. 효력을 높이려면 피의자를 불러서 정식 조서를 쓰게 한다.

이런 전화를 받으면 수사기관에 문의를 하라는 조언이 나온다. 현행법상 자신 명의의 계좌가 실제로 범죄에 연루됐다면 범죄수익은닉 등 혐의로 수사를 받을 수 있다.

명의를 빌려주거나 팔지 않았는데 나도 모르게 범죄에 이용됐다면 처벌을 피할 수 있다. 본인의 소명이 필요한 이유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 일선 경찰서 수사관은 "피싱 전화를 받으면 가까운 경찰서 민원실에 방문해 진위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며 "피싱범 수사도 함께 의뢰해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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