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민 변호사

[미디어파인 전문칼럼] 2019년, ㄱ씨는 성명불상자 ㄴ씨에게 체크카드를 보내주면 대출을 해주겠다는 제안을 들었다. ㄴ씨는 본인의 업체가 합법적 대출업체가 아니기 때문에 개인 계좌를 사용할 수 없다며, 원금 및 이자를 납부할 카드를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말을 믿은 ㄱ씨는 ㄴ씨에게 본인 명의 계좌와 연결된 체크카드를 보냈다. ㄱ씨는 보이스피싱의 현실적 피해자이기도 하지만, 전자금융거래법 제6조를 위반한 피의자이기도 하다.

전자금융거래법 제 6조 3항에 따르면 ▴접근매체를 양도하거나 양수하는 행위 ▴대가를 수수(授受)ㆍ요구 또는 약속하면서 접근매체를 대여 받거나 대여하는 행위 또는 보관ㆍ전달ㆍ유통하는 행위 ▴범죄에 이용할 목적으로 또는 범죄에 이용될 것을 알면서 접근매체를 대여 받거나 대여하는 행위 또는 보관ㆍ전달ㆍ유통하는 행위 ▴접근매체를 질권의 목적으로 하는 행위 등을 한 경우 처벌 대상이 된다. 이를 위반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 벌금형에 처한다.

이에 근거해 1, 2심은 ㄱ씨가 정상적으로 대출받기 어려운 상황에서 ㄴ씨로부터 대출받을 기회를 얻기로 약속하여 체크카드를 교부한 것이므로 대가 관계가 있다고 보고,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혐의를 인정. ㄱ씨에게 벌금 3백만 원을 선고했다.

하지만 대법원 판결은 달랐다.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ㄱ씨에게 벌금형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한 것. 대법원은 대출 기회와 체크카드 교부행위가 대가관계에 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ㄱ씨는 대출금 이자와 원금을 회수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ㄴ씨의 말에 속아 이 수단으로 체크카드를 교부한 것이므로, 대출 받을 기회를 얻기 위한 대가로 교부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앞선 사례와 같이 보이스피싱의 경우 피해자가 곧 피고인이 되어 처벌 받을 위기에 놓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 1심, 2심, 대법원까지 간 판결에서 어떤 증거로 어떤 해석을 하느냐에 따라 처벌도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보이스피싱 조직은 현금을 안전하게 전달해 줄 중간책을 속여 사건에 끌어들이는 경우가 많다. ㄱ씨 사례처럼 체크카드나 계좌 정보를 받아 범죄에 이용한다거나 고액 아르바이트로 사람을 모집하여 단순 사무 업무인 것처럼 꾸며 전달책 역할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렇게 보이스피싱 중간책 역시 보이스피싱 사기범에게 속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는 대응이나 증거, 처벌이 완전히 달라지는 바. 수사 초기부터 현명한 대응을 해야 한다.

보이스피싱 사건에 중간책으로도 가담한 경우, 미필적 고의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재판에 설 수 있다. 보이스피싱 사기에 가담한 정황이 명확하여 사기죄로 인정되면 10년 이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 벌금형에 처하며, 미필적 고의로 사기를 방조한 혐의가 인정되면 사기죄보다는 감경될 수는 있으나 처벌될 수 있다.

피해자가 많고 피해 금액이 많은 경우 보이스피싱 중간책의 역할이 사기 성립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처벌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특히 ‘미필적 고의’에 대한 판단이 처벌 수위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

미필적 고의란 본인의 행위가 범죄를 돕거나 일으킬 발생 가능성을 인지했음에도 이를 인용하고 그 행위를 한 상태다. 미필적 고의가 없었다는 점을 객관적 증거, 진술로 증명해야 한다.

이렇게 보이스피싱 사건은 본인이 피해를 입었음에도 피의자가 되어 조사를 받을 수 있다. 경기불황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유혹에 빠지기 쉽겠지만 그 대가는 상당한 바. 사건에 연루되지 않도록 조심하고, 사건에 연루되었다면 형사전문변호사와 상담 후 함께 신중한 대응을 해야 할 것이다.(법무법인 창과방패 이민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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